백연(白鳶) - 7화. 비명(悲鳴)이 멈춘 자리

사흘째 되던 밤, 일행은 마침내 첫 번째 마을에 닿았다.

그러나 그것을 마을이라 부르는 것은 생존자에 대한 기만이었다.

그곳은 이제 인간의 온기가 머무는 터전이 아니라, 시간이 강제로 멈춰버린 거대한 무덤에 불과했다.

 

집들의 문은 기괴하게 뒤틀린 채 열려 있었고, 주인 잃은 밥그릇 위에는 미처 식지 않은 온기가 서린 밥알이 굳어가고 있었다.

문 앞에는 아이의 신발 한 켤레가 가지런히 놓여 있었다.

누군가 금방이라도 문을 열고 나와 아이의 이름을 부를 것만 같은 착각이 들 정도로, 일상은 너무도 생생하게 박제되어 있었다.

 

군졸들 사이에서 마른침을 삼키는 소리가 들려왔다.

 

구이한이 말에서 내려 마을의 심장부로 걸어 들어갔다.

그의 발소리가 쌓인 눈을 짓밟을 때마다 비명 같은 소리가 고요를 깼다.

그는 집 안을 들여다보고, 마당의 흔적을 훑었다.

눈 위에는 발자국들이 어지럽게 널려 있었다.

집에서 밖으로, 숲으로 이어진 발자국은 어느 지점에서 갑작스럽게 끊겨 있었다.

눈이 거칠게 흩어진 그 자리는 누군가 짐승처럼 끌려갔음을 노골적으로 증명하고 있었다.

 

마을 어귀, 수백 년을 버텼을 느티나무 아래에서 단경은 숨을 멈췄다.

사람이었다. 아니, 사람이었던 것이었다.

허리가 기역 자로 꺾인 노인은 가죽만 남은 앙상한 몸으로 나무에 묶여 있었다.

 

구이한이 그 앞에 무릎을 꿇었다.

그의 커다란 손이 노인을 옭아맨 거친 밧줄을 단숨에 끊어내고, 무너지는 육신을 양팔로 받아냈다.

 

"군의(軍醫)!"

 

구이한의 외침에 노인이 천천히 눈을 떴다.

 

다행히 눈동자는 귀병의 붉은빛이 아니었다.

그러나 그 흐릿한 안구에 고인 것은 살아있는 자의 생기가 아니라, 켜켜이 쌓인 지독한 공포였다.

노인의 입술이 달싹였다. 목소리는 이미 마른 우물처럼 갈라져 소리가 되지 못했다.

구이한이 노인의 입가에 귀를 가까이 댔다.

 

"...불... 불... 불..."

 

단경이 다가가자 구이한이 서늘한 눈빛으로 일어섰다.

그는 노인을 군졸들에게 넘기고 마을 어귀의 커다란 화로를 응시했다.

화로에는 재만 가득했다.

쌓인 재의 빛깔로 보아 꺼진 지 이삼 일도 되지 않은 것이었다.

 

불이 꺼졌다.

그리고 귀병이 들어왔다.

 

"불이 꺼지면... 귀병이 인간의 경계를 넘어오는 것입니까?"

 

단경의 물음에 구이한은 대답 대신 차가운 화로 안을 들여다보았다.

 

"땔감이 없었소. 불을 지필 그 무엇도 이 마을엔 남지 않았던 거지."

 

옆에 서 있던 이현의 얼굴에서 평소의 여유가 사라졌다.

그는 화로를 쏘아보는 대신, 보이지 않는 거대한 악의를 응시하는 듯했다.

북방의 백성들을 지켜야 할 땔감과 물자는 분명 한양에서 끊임없이 올라오고 있었다.

그러나 마을의 화로는 비어 있었다.

누군가 의도적으로 공급을 차단하고, 마을의 불을 꺼뜨린 것이다.


 

단경은 구이한을 따라 마을의 가장 작은 집 안으로 들어갔다.

그곳은 아이의 방이었다.

작은 이불은 주인이 급히 빠져나간 듯 흐트러져 있었고, 벽에는 뭉툭한 붓으로 그린 그림 하나가 붙어 있었다.

사람의 어깨 위에 작은 새 한 마리가 앉아 있는 그림.

 

구이한은 그 조잡한 그림을 오랫동안 바라보았다.

그의 시선은 마치 그 그림 속에 갇힌 아이의 영혼을 찾으려는 듯 집요하고도 서글펐다.

단경은 그의 옆에 서서 침묵을 공유했다.

10년 전, 자신의 아버지가 처형당하던 날의 눈발이 이 방 안에서도 내리는 것만 같았다.

구이한이 먼저 방을 나섰다.

단경이 마지막으로 그림을 돌아보았다.

사람과 새. 아이는 어디로 끌려갔을까.

발길이 떨어지지 않아 멈춰 선 단경의 뒤로 이현의 그림자가 드리워졌다.

 

"가시오, 백연."

 

이현의 목소리는 평소보다 낮게 가라앉아 있었다.

 

"여기 오래 머물면, 다시는 나가지 못하게 되오."

 

단경은 무거운 발걸음으로 문을 나섰다.

두 사람은 나란히 눈 덮인 길을 걸었다.

저 멀리 군졸들과 거리를 둔 채 홀로 걷는 구이한의 뒷모습이 보였다.

 

"구 참판께서는... 이런 광경을 열 번이나 보신 겁니까?"

"그렇소. 열 번을 보고, 열 번을 조정에 보고했지. 그리고 그 보고는 단 한 번의 예외도 없이 묵살당했소."

"그런데도... 무너지지 않으시는군요. 참으로 기이할 정도로 강한 분이십니다."

 

단경의 말에 이현이 헛웃음 같은 숨을 내뱉었다.

 

"무너지지 않는 것이 아니오, 백연."

 

이현이 멈춰 서서 멀어지는 구이한의 등을 눈에 담았다.

 

"무너지지 않으려고, 제 영혼을 깎아내며 버티고 있는 거지. 그게 저 남자의 방식이오."

 

단경은 앞을 보았다.

눈 덮인 광야를 가로지르는 구이한의 뒷모습은 강철처럼 단단해 보였으나,

그 주변을 감싼 공기는 비참할 정도로 시리고 외로웠다.

무너지지 않는 자는 경외심을 불러일으키지만,

무너지지 않으려 발버둥 치는 자는 보는 이의 심장을 갈갈이 찢어놓는다.

단경은 처음으로 그 남자의 등에 손을 얹어주고 싶다는, 위험하고도 부질없는 생각을 했다.

사각, 사각. 눈을 밟는 소리만이 그들의 뒤를 쫓고 있었다.

 

소설 백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