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연(白鳶) - 4화. 이현(李賢)이라는 사람

닷새째 아침이었다.

해가 완전히 뜨기 전, 이현이 단경의 방문을 두드렸다.

“백연.”

“……무슨 일이오?”

문이 열리자 이현이 들어왔다. 그의 손에는 작은 약포가 들려 있었다.

“어젯밤 그 상처.”

단경은 천으로 감긴 자신의 손을 내려다봤다.

“이미 감았소.”

“갈아야 하오. 밤새 피가 굳으면 천이 달라붙소.”

“내가 직접 하겠소.”

“허허, 앉으시오.”

이현은 문을 닫고 바닥에 자리 잡았다. 오래 머물 마음은 아니었다. 단경도 어색하게 옆에 앉았다.

이현이 천 끝을 잡아 천천히 풀었다. 손등에 난 상처가 드러났다. 깊진 않았지만 길었다. 이현이 약포를 열자 쓴 냄새가 퍼졌다.

“이재윤이라 했소?”

이현은 손을 멈추지 않은 채 물었다.

“예?”

“아, 미안하오. 이현이라 했소. 처음에 이름을 잘못 들었소.”

단경이 조용히 이현을 바라봤다.
이 사람이 지금 무슨 말을 하고 있는가.

이현은 상처에 약을 발랐다.

“당신은 무엇을 하는 사람이오?”

“상인이오.”

“상인이 왜 병조에 있소?”

“이유가 있소.”

“어떤 이유요?”

이현이 새 천으로 단경의 손등을 감으며 말을 이었다.

“경안상회가 삼 년 전부터 이상한 일을 겪고 있소. 상단 물자가 병조 명의로 수송되는데, 병조 공식 기록에는 그 수송이 빠져 있소.”

단경이 고개를 들었다.

“어떤 물자입니까?”

“불을 내는 것들이지요.”

이현이 덧붙였다.

“유황, 솔방울기름, 마른 솔가지랑 풀. 한꺼번에 큰 불을 낼 수 있는 것들이오. 이게 병조 명의로 북방에 올라가는데, 실제 병조 기록에는 그 흔적이 남지 않소.”

단경의 얼굴이 굳어졌다.

귀병은 불에 약하다.
불을 내는 물자가 병조 명의로 북방으로 올라가는데, 실제로 북방 마을에는 그것이 보이지 않는다.
결국 그 물자가 향하는 곳이 따로 있다는 뜻이었다.

“그게 혹시 병조 판서의 짓입니까?”

이현이 잠시 손을 멈췄다. 그러고는 다시 힘을 담아 대답했다.

“확인 중이오. 아직 확실한 증거는 없소.”

“벌써 삼 년이라니요.”

“조심해야 하오. 이걸 아는 사람 자체가 위험해지는 구조요.”

단경은 알고 있었다. 아버지가 남긴 말이 떠올랐다.

“왜 제게 이런 이야기를 하시는 겁니까?”

이현이 마지막으로 천 끝을 정성껏 매듭지었다. 그리고 단경의 얼굴을 바라봤다.

“귀공은 구 참판이 유심히 보고 있소. 이 안에서 중요한 인물이 될 거요.”

“그게 이유입니까?”

“지금은 그렇소.”

단경이 이현을 오래 응시했다.

거짓말이다.
이 사람은 내게 뭔가 더 알고 있다. 다만 지금은 굳이 말하고 싶지 않은 것 같다.
분명 그럴 만한 이유가 있을 것이다. 아직 묻지 말자.

“같이 하겠소?”

이현이 조용히 시선을 올렸다.

“성급하게 정할 일은 아니오.”
“망설일 시간이 많지 않소. 귀병이 병조 안까지 들어왔고, 그걸 보낸 자가 이 안에 있소. 삼 년 전부터 병조 명의로 물자를 움직였던 그 자 말이오.”

단경이 말을 이었다.

“십 년 전에도 똑같은 일이 있었습니다.”

이현의 손이 굳게 멈췄다.

“그걸 어떻게 아오?”
“갑술년 공문에서 봤습니다.”

한동안 이현이 단경을 바라봤다. 머릿속에 뭔가 정리하는 듯 보였다.

“…그걸 구 참판이 보여주었소?”
“그렇소.”

이현이 눈을 감았다가 떴다.

“한 가지만 말해두겠소.”

“말씀하시오.”

“구이한 참판 말이오.”

단경이 이현을 바라봤다. 이현이 천천히 입을 열었다.

“그 분은 한 번 지키겠다 하면 절대 놓지 않소. 그게 사람이든 칼이든. 참판만의 방식이지요.”

“왜 저에게 그런 얘기를 하십니까?”

이현이 단경을 마주 보았다.
그 눈빛엔 낮도 밤도 아닌, 오랜 세월을 품은 세 번째 눈이 깃들어 있었다.

“이번 출병에서 귀공이 바로 그가 지키고자 하는 사람이 될 겁니다.”

“출병이라니요?”

“곧 있을 것이오. 구 참판이 다섯 번째 출병을 요청할 테고, 이번에는 허락이 떨어질 겁니다.”

“그걸 어떻게 아십니까?”

이현이 자리에서 일어섰다.

 

“윤 판서가 곧 움직일 겁니다. 더 자세한 이야기는 금방 전해드리겠소.”

문을 열자 아침 햇살이 방 안으로 스며들었다.

"아, 그리고."

이현은 뒤돌아보지도 않은 채 말을 이었다.

"어젯밤에 구 참판이 소매를 찢어서 손을 감아줬던 일."

단경의 표정이 굳어졌다.

"..."
"그게 뭐 어쨌다는 것이오?"
"참판은 누구에게도 쉽게 마음을 열지 않는 분이오."

문이 닫혔다.

 

단경만 홀로 남았다.
그는 감긴 손등을 바라봤다.
이런 일, 누구에게도 일어난 적 없다. 왜 하필 나한테는.
마땅한 대답이 떠오르지 않았다.
창밖으로 눈이 소리 없이 내리고 있었다.

그날 오후.

구이한이 조태선 참의에게 다시 출병을 요청했다.
역시 거절당했다.
하지만 구이한은 주저하지 않았다. 그냥 나갔다. 단경은 그런 그의 등 뒤를 바라봤다.

어제와는 전혀 다른 모습이었다.

혹시 저 사람이 결심한 게 있는 걸까.

그때 이현이 조용히 말했다.

"참판이 오늘 밤 윤 판서를 만날 겁니다."
"..."

단경은 이현을 바라봤다.

이현은 조용히 붓을 들었다.

"그리고 내일... 출병 명령이 내려올 것이오."

다음날 아침.

드디어 조정에서 북방 출병이 결정됐다.
병조에 이 소식이 닿은 건, 모두가 아침 식사를 마쳤을 무렵이었다.
내관 하나가 공문을 들고 청사에 들어섰다. 조태선 참의가 문서를 받아 읽었다.
순식간에 무관들 사이가 술렁였다.
석 달 동안이나 묵살된 일이었는데, 갑자기 결정이 난 것이다.

이현은 필사 공문을 흘끗 바라보며 말했다.

단경은 붓을 손에서 놓지 않았다.

"사형 말씀대로 되었소."
"… 이제부턴 모두가 목숨을 건 대국에 들어선 셈이되었소."

출병 명단이 내려온 건 오후였다.

 

선봉은 구이한.

단경은 그 명단에서 자신의 이름을 찾았으나 없었다.

선봉. 최전선. 귀병이 가장 많이 출몰하는 자리, 가장 먼저 들어가야 하는 곳.

단경은 이현의 말을 떠올렸다.

구이한이 청사로 걸어들어와 명단을 훑어봤지만 아무 말 없이 앉았다.

조태선이 조심스럽게 물었다.

"선봉이 좀 과하지 않습니까? 참판이 직접 나서실 것까지야…"
"제가 원한 일입니다."
"그래도…"
"......"

조태선은 더 말을 잇지 않았다.

구이한은 붓을 들어 명단에 수행 인원을 추가했다.

이현.

그리고...
백연.

단경은 자신의 이름에 시선이 머물렀다.
구이한이 붓을 내려놓으며 말했다.

"할 말이 있소?"
"없습니다."

"전장은 처음이오?"

"예."

구이한이 단경을 잠시 바라봤다.

"두려운가?"
"아닙니다."

구이한은 조용히 고개를 끄덕이고 돌아섰다.

단경은 그의 뒷모습을 오래 바라봤다.

나를 왜 데려가는 걸까...

이현이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보았소?"
"무얼."
"구 참판이 누군가를 먼저 데려가겠다고 한 건, 나를 빼면 이번이 처음입니다."

단경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이현이 덧붙였다.

"참판이 그대를 지키려 하나 보오."

곁에 두고 지키려는 거다.
나를.
대체 왜…

 

소설 백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