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연(白鳶) - 10화. 소리(音)의 근원, 그리고 목격자

갑산에서 사흘째 되던 날, 새벽의 안개가 채 걷히기도 전이었다.

구이한이 군막으로 임단경과 이현을 불러들였다.

사내의 시선은 이미 지도 너머, 더 서늘한 북쪽의 심연을 향해 있었다.

 

“더 북쪽으로 올라갈 것이오.”

 

이현이 옅은 미소를 지우며 물었다.

 

“병력은 어찌하십니까.”

 

“군영에 두고 가겠소. 움직이는 것은 우리 셋뿐이오.”

 

“셋이서 말입니까.”

 

“귀병을 조종하는 소리의 근원을 찾아야 하오. 대군이 움직이면 저들의 촉수에 먼저 들킬 뿐이오.”

 

단경이 고삐를 고쳐 잡으며 구이한을 직시했다.

 

“언제 출발하십니까.”

“지금 당장.”

 

사내의 단호한 음성이 군막의 정적을 깨뜨렸다.

소설 백연
소설 백연

 

갑산의 북쪽 고개는 인간의 발길을 허락지 않는 금기(禁忌)의 땅이었다.

길이 존재하지 않는 눈밭을 세 사람은 묵묵히 걸었다.

고개를 들어도 하늘은 보이지 않았고, 빽빽하게 침묵하는 침엽수림만이 그들의 숨통을 조여왔다. 숲은 기이할 정도로 고요했다.

새들의 지저귐도, 흔한 짐승의 기척도 없었다.

오직 세 사내가 눈을 밟아 들어가는 서늘한 파열음만이 거친 호흡에 섞여 들었다.

 

한 시진쯤 지옥 같은 설산을 헤맸을 무렵, 선두에 서 있던 구이한이 우뚝 걸음을 멈췄다.

단경과 이현 역시 그 뒤에서 숨을 죽였다.

구이한이 조용히 손을 들어 올렸다.

더는 움직이지 말라는 포식자의 신호였다.

 

사내가 눈을 감고 귀를 기울였다.

단경의 귀에는 그저 시린 북풍 소리 외엔 아무것도 닿지 않았다.

그러나 구이한의 얼굴이 사납게 일그러졌다.

남자의 예민한 감각이 기어이 무언가를 포착해 낸 것이다.

구이한이 돌연 동쪽의 가파른 능선으로 방향을 틀어 성큼성큼 걷기 시작했다.

단경과 이현이 무서운 속도로 그의 뒤를 쫓았다.

 

숨이 턱 끝까지 차오를 무렵, 사방을 가로막던 나무들이 거짓말처럼 사라지며 벼랑 끝 능선이 모습을 드러냈다.

바람이 휘몰아치는 절벽의 단애(斷崖).

그 황량한 중심에 기괴한 형상의 목조 구조물이 거대한 괴수처럼 솟아 있었다.

나무로 정교하게 깎아 만든, 악기의 형상을 한 괴물이었다.

높낮이가 제각각인 수십 개의 나무 관들이 촘촘히 줄을 지어 서 있었고,

그 거대한 관들의 최상단에는 바람을 집어삼킬 듯한 구멍들이 입을 벌리고 있었다.

 

구이한이 그 기괴한 장치 앞에 멈춰 섰다.

 

마침 절벽 밑바닥에서 거친 조망풍이 몰아쳤다.

바람이 나무 관의 구멍을 관통하는 순간, 기분 나쁜 공명음이 대기를 찢고 흘러나왔다.

 

웅— 웅——

 

그것은 인간의 성음도, 악기의 수려한 가락도 아니었다.

짐승의 비명과 망자의 통곡을 한데 섞어 짓이겨놓은 듯한 주술적인 소음이었다.

단경은 온몸의 살갗에 소름이 돋아나는 것을 느꼈다.

 

이 소리다.

 

갑산의 밤을 지옥으로 만들었던,

귀병들이 고개를 숙이며 복종하게 만들던 명령의 실체였다.

구이한의 눈매가 서늘하게 가라앉으며 장치를 부수기 위해 손을 뻗었다.

 

“멈추십시오, 참판.”

 

뒤에서 이현이 급히 그의 손목을 가로막았다.

 

“이것을 파괴해선 안 됩니다. 만든 자들의 덜미를 잡을 유일한 물증입니다.”

 

구이한의 사나운 시선이 이현에게 닿았다.

이현은 개의치 않고 다가가 소리 장치의 표면을 거친 손길로 쓸어내렸다.

 

“나무의 결이 특이하군요. 우리에게서는 결코 자라지 않는 목재입니다. 왜(倭)에서 건너온 물건이 확실합니다.”

 

단경이 이현을 의아하게 바라보았다.

 

“상단에 몸을 담고 있으면 싫어도 알게 되오. 밀수되는 최고급 목재의 질감이니...”

 

이현이 자리에서 일어서며 나직하게 읊조렸다.

 

“흑수회(黑水會)의 짓입니다.”

“왜구들과 결탁한 자들이군요.”

 

단경의 말에 이현이 고개를 끄덕였다.

 

“조선 내부의 가장 높은 곳에 심어진 자들이 삼 년 전부터 이 위형의 장치들을 북방 곳곳에 은밀히 세워왔던 것입니다.”

 

구이한이 관인이 담긴 상자를 쥐며 씹어 뱉듯 말했다.

 

“병조의 명의를 도용해서 말이오.”

“그렇습니다.”

 

세 사내가 거대한 음모의 실체 앞에 나란히 섰다.

절벽을 타고 넘어온 바람이 다시 장치를 울렸다.

낮고 불길한 소음이 그들의 발밑을 조여왔다.

 

단경이 물었다.

 

“이 장치들을 전부 찾아내어 끊으면, 귀병도 멈추는 것입니까.”

“그렇소. 하지만 북방 전역에 이런 것이 얼마나 더 숨겨져 있을지는…….”

 

구이한이 말을 흐렸다.

이현은 이미 품에서 지필묵을 꺼내 장치의 구조를 정교하게 그려내고 있었다.

붓을 쥐고 형태를 복사해 나가는 이현의 손끝이 매섭도록 빨랐다.

구이한이 그런 이현을 가만히 내려다보았다.

 

“한낱 상인치고는 무예도, 서화도 지나치게 출중하군.”

“돈이 되는 물건의 형상을 정확히 기억하는 것 또한 장사꾼의 미덕이지요.”

 

이현이 장난기 없는 담백한 얼굴로 답했다.

구이한은 더 추궁하지 않고, 천천히 시선을 돌려 단경을 바라보았다.

사내의 시선이 그녀의 가슴팍에 머물렀다.

 

“그 서첩에.”

 

단경이 침을 삼켰다.

 

“임 판서께서 생전에 쫓으시던 기록이 바로 이것이었소.”

 

단경은 눈앞의 거대한 소리 장치를 바라보았다.

아버지는 이 괴물을 찾기 위해 그 늙은 몸을 이끌고 세 번이나 이 혹한의 북방을 다녀갔던 것이다.

그리고 진실을 단 한 걸음 앞에 두고, 한양의 음모에 휘말려 처참하게 가로막혔다.

 

내가 찾았어, 아버지.

 

순간 눈시울이 뜨겁게 달아올랐다.

열세 살의 겨울 이후, 그녀는 단 한 번도 눈물을 흘려본 적이 없었다.

모질게 닫아걸었던 눈물샘이 아버지가 보았던 똑같은 절벽 앞에서 기어이 터져 나오려 하고 있었다.

단경이 필사적으로 고개를 들어 하늘을 보았다.

구이한은 그 고집스러운 옆얼굴을 가만히 응시했다.

 

사내가 느릿하게 걸어와 단경의 곁에 섰다.

 

그는 어설픈 위로의 말을 건네지 않았다.

다 괜찮아질 거라는 기만적인 약조도 하지 않았다.

그저 자신의 거대한 체구로 절벽에서 불어오는 가장 날카로운 바람을 온몸으로 막아서며, 단경의 그림자 곁을 묵직하게 지켰다.

그 무언의 무게가 그 어떤 감언이설보다 컸다.

단경은 비로소 타오르던 눈물을 안으로 꾹 눌러 담을 수 있었다.

사내의 옷깃에서 풍기는 서늘한 침향 냄새와 더운 숨소리가, 절벽의 기괴한 소음을 지워버릴 만큼 가깝게 들려왔다.

단경이 눈을 떴다.

구이한이 여전히 곁에 있었다.

 

“철수하겠소.”

 

구이한이 먼저 걸음을 옮겼다. 단경이 물었다.

 

“한양으로 돌아가시는 것입니까.”

“아직은 아니오. 판서를 확실히 무너뜨릴 흑수회의 내부 장부가 필요하오.

우선은 갑산으로 돌아가 다음을 도모하겠소.”

 

단경이 고개를 끄덕였다.

세 사람은 다시 어둠이 내려앉는 숲속으로 발길을 돌렸다.

이현이 뒤에서 그림을 갈무리하며 걷다가, 혼잣말처럼 작게 중얼거렸다.

 

“되었소.”

 

단경이 의아한 듯 뒤를 돌아보았다.

이현이 평소의 영민한 미소를 지은 채 서 있었다.

 

“무엇이 되었단 말입니까.”

“아무것도 아니오.”

 

이현이 걸음을 재촉했다.

선두에는 여전히 흔들림 없는 구이한이 걷고 있었고, 단경은 두 사내의 중심에서 보폭을 맞췄다.

 

절벽 너머로 완전히 어둠이 내리앉았으나, 세 사람의 눈빛만큼은 새벽의 칼날보다 더 날카롭게 제련되어 있었다.

한양의 가장 높은 성을 무너뜨릴 보이지 않는 궤적이, 북방의 거친 능선 위에서 비로소 하나의 서슬 퍼런 칼날로 완성되고 있었다.